top of page

About

하늘나무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내 이름의 뜻은 하늘나무다. 딱히 이름 값을 해야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자라면서 나도 모르게 이름대로 살게 되었다.

 

 

 

숲에는 키가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었다. 하늘까지 뻗은 높은 나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키작은 나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드문드문 서 있는 높은 나무들만 보였다. 그 나무들은 구름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하늘에 닿은 것이 틀림없어보였다. 부러웠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던 나는 뿌리를 한껏 뻗치고 잔가지마저 아껴가며 키가 자라는 일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 덕에 똑같이 비가 내려도 다른 동년배 나무들보다 키가 빨리 자랄 수 있었다. 주위의 나무들이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숲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들도 나를 곁눈질로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우쭐한 마음에 나는 뿌리를 더 힘차게 뻗어 한껏 물을 빨아들였다.

 

 

 

구름을 뚫고 자라나는 데 성공했을 때였다.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이 축하인사를 건네왔다. 긴 가지를 뻗어 뿌듯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아직 나보다는 키가 한참 큰 그들이지만 분명히 그 나무들의 끝이 가깝게 보였고, 하늘은 아직도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는 것이었다. 

 

 

 

키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산소가 희박해 숨을 쉬기가 힘들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무라는 존재에게 하늘에 닿는 일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줄곧 위만 바라보던 고개를 힘없이 땅을 향해 떨구었다. 

 

 

 

주변의 키작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늘 그곳에 서 있던 그들을 그제서야 처음으로 자세히 살펴보게된 나는 깜짝 놀랐다. 대체 이 나무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늘고 키도 작은데다 시들기까지 해버렸을까. 순간 사방으로 뻗어 있는 내 뿌리가 떠올랐다. 더 크게, 더 높이 자라기 위해 다른 나무들의 자리까지 온통 뻗어서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큰 나무들의 주변 사정은 더 처참했다. 

 

 

 

지나온 모든 인생이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어느 나무들처럼 병이 들어 말라죽거나, 벼락이라도 맞아 불타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진짜로 병들어 앓기 시작했다. 키가 줄어들고 줄기가 가늘어졌다. 잎도 시들어 떨어져내렸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밤, 마침내 번개가 내리쳐 몸에 불이 붙었다. 몸이 안에서부터 활활 타고 재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 나무가 하늘까지 닿게 자라다니 그런 일 따윈 없는 거야, 하늘나무 같은 건 처음부터 없는 거였어, 이제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 이대로 재가 되어 없어지는 게 나아, 속으로 되뇌이며 눈을 감았다. 그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나무는 하늘까지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란다. 하늘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함께 사이좋게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다. 이제 넌 새로 태어났으니 나를 바라보며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하늘이다.’

 

눈을 떠보니 숲에 봄이 찾아와 있었다. 내 키는 다른 나무들과 엇비슷할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고 뿌리도 쪼그라들어 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평화롭고 포근한 느낌이 나를 감싸온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내 주위의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되살아난 나무들은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그들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다른 나무들도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귓가에는 아직도 그 겨울날 밤 들었던 목소리가 울리는 듯 하다. 

 

‘이제 넌 새로 태어났으니 나를 바라보며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다. 나는 하늘이다.’

 

저 멀리, 구름 위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 키가 큰 나무들과 그 주변의 시들시들 앓고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 Sky Tree Magazine

    bottom of page